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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광고인의 인식 드러내는 여혐광고
2015.11.06
조회수 14336
여기 다섯 편의 광고가 있습니다. 밀크티와 햄버거 같은 소비재에서 오지탐험대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과 은행, 그리고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포스터까지 다종다양한 영역의 광고들입니다.
광고하는 종류도 다르고, 내용도 다른 다섯 편의 광고를 한 단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여혐(女嫌), 여성혐오의 준말입니다.
우리가 이별하던 날
내가 흘렸던 검은 눈물은
슬퍼서가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일이 생각나서였어!
신상으로 가득 채워놓은
내 위시 리스트는 어떡하니?
블랙 밀크티! 텅 빈 내 마음을 채워줘-
맛있는 버라이어Tea
대만에서 온 밀크티 전문점 ‘공차’의 테이크아웃 컵 홀더에 적힌 문구입니다. 이 브랜드의 지하철 광고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영화용 친구, 식사용 오빠, 수다용 동생, 쇼핑용 친구, 음주용 오빠!
어장관리?
아니 메시급 멀티플레이!
기분 따라 다르게 즐겨라-
여성이 주 고객인 밀크티 전문점의 광고가 이래도 되는 걸까요? 노이즈마케팅인지 아닌지는 광고를 보는 우리들보다 광고를 만드는 전문가인 제작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쁜 방법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나쁜 이미지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라도 아예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보다야 나으니 이런 광고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단순 주목끌기 노이즈 마케팅?
넘치는 광고 경쟁에서 주목 받기 쉬운 사회적 코드를 활용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광고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남성에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최근 이슈가 되는 여혐 논란이 이는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은 장기간의 불경기에 지친 남성들에게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용 멘트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여성을 희생시키는 못된 습성을 감추지 않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자기야∼ 나 기분전환 겸 빽 하나만 사줘”
음... 그럼 내 기분은?
숯놈들의 버거 스모키와일드 치킨버거
여성이 남성에게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열 받은 남성-광고 하단에 적힌 ‘숯놈들의 버거’라는 의도적인 맞춤법 이탈은 논외로 하더라도-의 심리를 시리즈 광고에 내보내는 광고는 ‘명품 가방 사달라는 여자’라는 피상적이긴 하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일부 여성의 한 측면을 기정사실화하고, 반복되는 광고를 통해 실재하는 현실임을 세뇌하게 합니다.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하고 코오롱스포츠가 후원하는 ‘청소년 오지탐사대’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게 하여 도전정신을 기르고 오지탐사를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고취시키기 위해 문화관광부와 함께 하는 행사입니다.
참가자를 모집하는 지난해 광고는 한때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어 해당 업체에서 자진 삭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대생의 이미지를 부적절하게 묘사하면서 오지탐험을 갈 수 있겠냐는 비아냥거림을 네티즌들이 환영할 리 없었겠지요.
침소봉대가 광고의 목적이 아니라면, 자명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임에도 끝끝내 우겨서 큰소리로 정답이라고 선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부 그런 여성들이 분명히 있다하더라도 광고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현실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왜곡
그렇게 일방적인 여성 비하와 여성 혐오의 확대재생산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광고에 활용할 만한 소재가 될지는 몰라도, 현실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구성원 절반을 혐오대상으로 몰아가는 일이니까요.
된장녀나 김치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에서 그런 성향의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그들을 광고의 주인공으로 발탁해 공개적으로 비웃고 놀리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역시 새로운 혐오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그런가하면 여성의 역할을 규정하는 광고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을 보여주는 광고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조건에 충족하면 손가락을 하나씩 접고 손가락 5개가 모두 접히면 벌칙을 받는다는 규칙의 게임을 광고에 응용한 사례입니다.
남편한테 아침밥 안 챙겨주는 여자, 접어!
가계부 적자내는 여자, 접어!
재테크 정보 없는 여자, 접어!
새마을 금고 아는 여자
주부가 해야 할 일 수칙을 하나하나 적시하며 손가락을 접고, 마지막에 새마을금고를 아는 여자만 남겨두는 광고입니다. 맞벌이 가정이 절반이 넘는 사회에서 여성의 임무만을 적시하는 광고는 여성에게 특정 역할을 강요하는 선입견을 굳어지게 할 뿐입니다.
편향적인 광고가 걸러지는 계기 돼야
가족 내의 역할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편향적인 광고가 걸러지면 좋겠습니다. 여성을 대상화한 광고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광고는 남자친구에게 자기 짐을 다 떠넘긴 여성이 피임만큼은 자신이 챙기라 충고하는 보건복지부의 포스터입니다.
‘피임은 셀프입니다’라니요. 짐을 남자친구에게 몽땅 맡기는 여성의 이미지도 문제지만, 피임은 여성이 알아서 하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포스터를 통해 우리는 피임을 여성이 셀프로 해야 한다는 가르침보다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복지부동한 인식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글_정진영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