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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 달러짜리 전시된 ‘바나나 작품’을 먹었다면?

김수빈 대학생 기자

2022.08.18

조회수 7996

COLUMN


12만 달러짜리 전시된 ‘바나나 작품’을 먹었다면?


현대 미술 작품 ‘코미디언’에 관한 미대생의 고찰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독자 여러분은 예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진지하게 감상하거나 즐기시나요? 

어느 날 문득 ‘예술’에 대해 궁금하다면 마이애미에서 처음 공개된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작품을 생각해 주세요.




#. 현대 미술, 그들만의 리그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이름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한 현대미술 전시회에서 경험했던 일입니다. 그곳엔 죽은 동물들의 사진 여러 장을 유리장 안에 넣어놓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무언가 감명을 받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저는 자신이 예술적 교양이 없는 바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괜히 고개를 끄덕여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전시회장을 돌아보았죠.


현대의 예술은, 특히나 현대 미술은 심오합니다. 유리 액자에 넣은 오래된 전화번호부가, 유리장에 넣은 돌들이, 심지어는 이러한 현대 미술을 풍자하기 위해 마구 짓밟아서 액자에 넣은 비니가 몇만 달러 가치의 ‘작품’이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은 난해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듯 느껴집니다.


#.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

이러한 ‘그들만의 리그’에 일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2019년 마이애미에서 처음 공개된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인데요. 작품은 무려 12만 달러에 팔린 상태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이 바나나를 보며 우리는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게 정말 예술이야?’ 하고 말이죠. 네, 맞습니다. 그게 작가의 의도입니다. 이 바나나의 이름은 ‘코미디언’으로 작가 마우리치오가 공개한 작품입니다. 그는 코미디언을 통해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12만 달러짜리 바나나 작품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나나가 상하면 12만 달러는 증발하는 걸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어있는 걸까?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러던 중 한 관람객이 전시한 바나나를 먹어버렸습니다. 이유는 배가 고파서. 그렇다면 이 사람은 12만 달러를 구매자에게 배상했을까요? 아닙니다. 구매자가 12만 달러를 지불하고 산 것은 ‘박스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그 자체가 아닌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매자가 산 건 보이는 바나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바나나를 바꿔 끼더라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보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저런 예술은 나도 하겠다.’ 하고 말이죠.


#. 마이애미 거리의 ‘코미디언’들

이 작품이 마이애미에 공개된 날, 마이애미 거리 곳곳에는 ‘가짜 작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전봇대, 식당의 벽, 담장 등에는 수많은 바나나들이 붙여졌습니다. 이 바나나들은 각각의 의도를 지녔습니다. 어떤 바나나는 현대 미술에 대한 풍자를, 어떤 것은 예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 심지어는 예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까지 이 작품에 반응하고, 참여한 것입니다. 수많은 코미디언의 탄생과 함께 이들은 또 한 명의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보고 웃을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는 이 바나나를 12만 달러를 주고 산 사람을 보며 웃을 것입니다. 


또 벽에 붙은 바나나를 심각하게 쳐다보며 심오한 해석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배가 고프다며 바나나를 먹어버린 사람도, 마이애미의 수많은 가짜 작품들도, 심지어는 이 모든 과정마저 하나의 ‘예술’이 되는 상황도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코미디언’인 이유는,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 그리하여 예술이란 무엇일까?

저에게 바나나에 붙여진 이름 ‘코미디언’은 설명하기 힘든 예술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작품입니다. 작가가 코미디언을 통해 던진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예술은 똥입니다. 남의 똥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똥은 누구나 쌀 수 있습니다. 예술이 어렵다면, 일단 똥을 싸세요. 그렇다면 예술이 될 것입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고, 우리는 모두 예술을 할 수 있으며,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가벼운 웃음과 함께 무거운 의미를 전한 이 바나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 작품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입니다.



글_김수빈 대학생 기자​